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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오섹슈얼(뇌가 섹시한 사람) 인문학 클럽 모임의 설국 여행 후기 상세보기
제목 사피오섹슈얼(뇌가 섹시한 사람) 인문학 클럽 모임의 설국 여행 후기
작성자 평생교육원 등록일 2019-08-30 조회수 41
첨부파일 설국 사진3.bmp
중부대 평생교육원 <사피오섹슈얼 인문학클럽>

사피오섹슈얼(뇌가 섹시한 사람) 인문학 클럽 모임의 설국 여행 후기

<설국을 보고, 설국을 읽고, 설국을 가다...>




중부대 고양캠퍼스 평생교육원 사피오섹슈얼(뇌가 섹시한 사람) 인문학 클럽은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본 후에 원작(소설, 시, 그림, 시나리오 등)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지난 2017년 9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총 30여 편의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진행된 인문학여행은 모옌의 [붉은 수수밭]과 펄벅의 [대지]의 중국을, 파스테르나크의 [닥터지바고]의 러시아와 시베리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일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칠레,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의 영국, 엘리스 먼로의 [곰이 산을 넘어오다]의 캐나다. 토마스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이탈리아 베니스, 존스타인백의 [에덴의 동쪽]의 미국, 조지버나드쇼의 [피그말리온]의 아일랜드, 귄터그라스의 [양철북]의 독일,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의 포르투칼, 마르케스의 [슬픈 창녀들의 추억]의 콜롬비아,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의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노벨상을 놓친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 야간열차]의 스위스과 포르투칼,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체코 프라하와, 스위스 베른, 카잔차스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그리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이탈리아, 프랑스 등 꽤 긴 여행을 부피감 있게 다녀온 기분이다.
그 중 잊혀지지 않는 여행은 상상에 머물지 않고 작품 집필지이자 영화의 무대, 소설의 배경지를 직접 다녀온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일본 니가타여행이다.


영화 《설국(雪國)》을 보다.
《설국》은 영화 감상부터 우리 사피오섹슈얼 인문학클럽의 첫 이벤트가 되었다. 필름을 구하기 어려워서 수소문 끝에 강화도 바닷가에 있는 동검도극장에 영화를 주문하여 보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것. 게다가 눈으로 덮인 영화 속을 빠져나오자 동검도 영화관 앞바다가 온통 흰 눈 세례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설국으로 시간이동을 한 듯 강한 인상을 받았다. 모두 그 때의 감동을 잊지 못 했다. ‘《설국》을 보고 나오니 세상이 설국으로 변해 있었다’ 는 말은 우리 멤버들 간에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영화 《설국》은 영화로 다섯 번 제작되었지만 그것을 모티브로 한 재탄생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우리가 동검도 영화관에 가서 본 《설국》은 1965작, 오바 히데오 감독작이었으며, 니가타 다카한 료칸에서 상영한 영화는 1957년작, 시로 도요다 감독 작품이다.
1) 1939년 이시모토 토키치 감독/ 38분 /
폴 로타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우무라 에이스케와 이시모토 토키치는 프로키노에서 온 이노우에 칸과 같은 재능 있는 영화인과 함께 일본 영화사를 설립. 이시모토 토키치는 ‘설국’이라는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 했다. 이시모토는 눈으로 뒤덮힌 야마가타의 신조라는 마을을 촬영하기 위해 3년이란 긴 시간을 보냈다. 눈과 싸우는 농부의 삶을 아름답게 묘사한 이 영화가 일본 다큐멘터리의 시작점이라고도 한다.
2) 1957년 시로 도요다 감독/ 2시간 이상 상영/1958년 칸 영화제 출품작/흑백영화/ 당시 야스나리가 《설국》을 집필한 니카타 다카한여관 2층 야스나리를 위한 공간이 지금까지 보존되면서 하루 두차례 상영./ 유자와 마치가 개발되기 전 50년대 당시 모습이 영화에 그대로
3) 1965년에 오바 히데오 감독(일본미의 거장)/ 출연: 반다이 미네코, 치노 카쿠코, 호주미 타카노부/113분/컬러영화
4) 1977년 고영남 감독 한국의 《설국》 제작/ 이영애, 박근형 주연
5) 2004년 《신설국》 일본에서 제작, 야스나리 탄생 100주년 기념 사시쿠라 아키라가 쓴 《신설국》이 원작.


《설국(雪國)》에 서다.

《설국》의 집필지이자 배경은 일본 니가타현 에치코유자와 지방이다. 일본작가로서 가장 먼저 노벨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책도 유명하지만 몇 번의 영화화로 이미 알려진 작품이다. 여행사도 특별한 기획여행만을 담당하는 곳과 매칭하여 우리 클럽의 의도를 반영한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2018년 12월 8일, 11명의 여행팀원이 공항에 모였다.

《설국》의 집필지이자 배경지인 에치코유자와 지방 고반료칸은 여느 소설의 배경보다 더 의미 있는 곳이다. 그 이유는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실제 1934년(35세) 에치고유자와 온천지역을 방문해서 만난 마쓰에(당시 마쓰에는 20살)라는 게이샤를 모델로 썼기 때문이다. 실제 둘의 관계에 대한 진실은 알 수 없으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마쓰에가 책 읽기를 좋아하고, 16살 때부터 일기를 써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둘은 게이샤와 손님의 관계로 만났지만 그만 사랑에 빠졌다는 풍문도 있다.
작가는 《설국》을 집필하면서 게이샤 마쓰에에게 사과 편지를 써서 양해를 구했다는 후문이 있다. 이에 대해 마쓰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25살 때 게이샤를 그만두고 에치고유자와 온천지역을 떠나, 결혼하여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1999년, 83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설국》은 이러한 실제 모델과 현존하는 시공의 존재성으로 인해 그 작품이 쓰여진 에치코유자와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니가타 에치코유자와 지방의 온천 료칸과 일대의 자연풍경, 생활모습, 일본 고유의 풍속이 눈이 그린 수채화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며, 그 지방, 그 곳을 모델로 촬영한 영화들이 여러편 제작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묵었던 료칸(旅館)은 유서 깊은 명물이 되었고, 료칸에는 아직도 그가 머물던 방과 자료실 등이 전시되어 있다.동네에는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을 딴 건물, 대중목욕탕, 호텔 등이 세워졌다. 설국 문학비, 설국문학관, 설국 산책로 등이 개발되었다. 80여년 전의 모습이야 사라지거나 때가 타고 낡아서 변했겠지만 아직도 마을 전체는 야스나리의 허무와 괴기에 가까울 정도로 지순한 두 여인의 희생적 사랑의 향기가 남아있을 것만 같다.
기대와 상상을 자제하면서 디데이를 기다렸다. 드디어 12월 8일, 오전 07:30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3층 출국장에서 인솔자를 만났다. 설국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하고 오셨다는 전문인솔자 申樣(신상)은 아직도 대학원을 다니는 4개 국어 능통석사님이라고 한다. 일본 나리타공항에 번쩍~ 두어시간만에 도착했다. 나리타 공항의 시계는 정오를 겨우 지나고 있었다. 버스로 달렸다면 서울에서 대전쯤 간 시간이다. 바람은 제법 쌀쌀하게 불었지만 기대만큼이나 마음도 부풀어 올라서인지 눈빛은 새벽에 기상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리타 공항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슬슬 걱정이 되었다. 가이드도 눈 소식에 민감하다. 오늘 오후에는 눈 소식이 있다는 예보를 들었다고 하지만 자신 있는 목소리는 아니다. 설국에 눈이 없다면? 상상할 수 없다.

실제 <설국>의 분위기와 향기는 상품이 되어 에치코유자와 지방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듯. 어디를 가도 ‘첩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설국이었다’라는 <설국>의 첫 문장이 적혀있다. 역앞 대형 간판, 상점 벽에 걸린 액자는 물론이고 다양한 기념품에도 이 문장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설국에 아직 눈이 없다.
출입구에는 설국에 나오던 유자와 지역 여인들의 옷차림을 한 마네킹이 보인다. 눈이 오면 눈바지를 입고 모직 망토를 걸쳤다.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눈바지 입은 고마코의 의상을 실제 만져 볼 수 있어서 비로소 <설국>의 고장에 서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작가는 설국의 배경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것이 독자들의 상상의 세계를 더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특히 터널을 빠져나오면 나타나는 에치코 유자와 지방은 터널이 시작되기 전의 세계와 양립되는 곳이다. 실제 이 터널 이름은 시미즈, 청수터널이다, 깨끗한 물의 터널, 터널을 지나면서 현실의 먼지가 씻겨지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실제 하야시 다케시는 ‘ 비현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선이며, 문 역할을 하는 것이 터널이며 비현실의 세계가 바로 설국’이라고 했다. 비현실의 세계로 가는 경계선이 터널이라는 의견에는 찬반양론이 존재하지만, 설국이 비현실의 세계라는 의견에는 크게 이론이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때의 ‘설국’이라는 곳은 단순한 지명의 은폐를 넘어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세계가 창출될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로써 지명을 숨기는 것과 아울러 ‘설국’이라는 새로이 부여한 명칭은 ??설국??의 설국다움, 즉 비현실적인 세계를 만들어 내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더구나 1935년부터 최종 완성에 이르는 12년은 일본현대사에서 굴곡이 많은 시기이다. 중일전쟁?태평양전쟁과 패전 등 문학과 전쟁, 전후 상황과 무관할 수 없다. 하지만, ??설국??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을 흰 눈으로 덮은 세상이다. 전쟁과 정치 사회현상은 무의식처럼 덮혀 있다. 하지만 금방 눈이 녹으면 드러나는 현상처럼 사람들의 의식은 불안한 허무와 집착에 쌓여있다. 그것이 곧 눈 덮힌 공간 ‘설국’의 의미일 것이다. 주인공 시마무라 島村의 눈에 비친 자연과 고마코 駒子. 요코 葉子를 중심으로 아슬아슬한 생명력과 백설의 순수한 그녀들의 사랑과 삶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일본어로 상영되지만 이미 영화와 책을 읽은 우리팀은 끈적끈적한 고마코의 대사를 입안에서 곱씹어본다. 더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화감상 후에 온천장으로 향했다. 사방이 격자창과 통유리로 되어있었다. 어둠이 눈(설,雪)을 감추었다고 상상하며 온천욕을 즐겼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하루였다. 내일 아침 백설의 설국이 맞아줄 것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카톡 알림소리에 눈을 떴다. 일행 중 부지런한 사람이 밤새 수북이 쌓인 눈을 맞이하고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이다.
방마다 미닫이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세상은 온통 설국으로 변해있었다. 20센티미터 정도의 눈이 계단과 나뭇잎 등에 내려앉아서 우리를 환영하는 찬가를 부르는 듯 했다. 운이 좋았다. 그 지방에도 첫눈이라고 한다.

어제 우리가 본 세상이 아니었다. 밤새 눈의 왕국에 양탄자를 타고 날아온 것 같다.
진짜 설국에 내린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눈이 되어 내려온 것은 아닐지...

우선 식사를 끝내고 료칸 구석구석을 탐방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숨결을 찾기는 힘들었지만 료칸에 보존되고 있는 그가 묶었던 방과 자료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시마무라가 밖을 바라보았을 창가에 서서 눈 덮인 산을 바라보기도 했다. 저만치 눈옷을 입은 고마코가 뛰어올 것 같은 환영을 기대하면서...

‘설국’에서 『설국』을 다시 생각하다.
-설국 탐험을 끝낸 둘째 날 밤, 긴 토론의 시간이 있었다.

‘설국’에서의 <설국> 토론

그러나 그날 밤, 구보타 한 병이 오순도순 하는 사이 비어졌다. 토론에 취해서 우리 일행은 쓰러질 여유가 없었다.

시마무라와 고마코, 요코의 관계는 더 깊어지고 복잡해졌다.
또한 눈과 죽음, 허무의 공통점과 의미는 결론이 없다.
다만 ‘사랑’이 허무를 극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누군가 ‘『설국』은 니가타에서만 나올 수 있는 소설’ 이라고 말했다. 그 어떤 소설보다도 공간적 배경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곳에 와서 당시의 그들의 삶을 공감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작가는 허무로 가득 찬 남자 시마무라를 통해 고마코에 대한 애정도 헛수고라고 말한다. ‘사랑도 삶도 모두 헛수고’라고... 하지만 결코 그는 그녀들의 순수한 사랑과 희생을 헛수고나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기억하는 여자 고마코와 눈에 등불이 켜진 여자 요코
두 여인에 대한 시마무라의 진심은 무엇일까?
일년에 한번쯤 오는 남자를 기다리는 고마코는 시마무라가 올 때마다 변덕을 보인다. 보고 싶다고 했다가 가버리라고 했다가, 숙소에 오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틈만 나면 들르는 변덕스런 여자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마코와 요코의 관계는 무엇으로 연결되어있는가?
연적 같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는 두 여자의 지순한 사랑을 현대의 우리들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고마코가 동물적 야성을, 요코는 식물성이라면 시마무라는?
『설국』에서 도덕성을 찾는다면?
‘설국’을 일본으로 대체하고 있는가?
작가는 생의 허무에 대한 해답을 말하고 있는가?

끝내 결론에 이르지 못하다. 인간의 삶은 어떻든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무를 이기는 한 가지 방법은 분명하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것, 그것은 이타심을 가장한 자기허무를 이겨내는 가장 이기적이며 인간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설국의 밤은 또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80여 년 전처럼~~

사랑도 삶도 모두 헛수고’라고 말했지만 그래서 그들의 헛수고가 더 아름답듯이~
우리들의 치열한 삶이 부질없고 헛수고라고 말할지라도 그것을 멈출 수 없으니 이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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